상담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좋은 일을 하시네요’, ‘ 그런데 그렇게 힘든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계세요?’이다.
앞의 이야기는 상담이라는 직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와 상담사로서 인정받는 것 같아 밖으로는 ‘아니 뭘요’라며 겸손의 손사래를 치지만 마음 한쪽 뿌듯함이 차오르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다. 그렇다면 또 다른 한 가지, 상담사들은 다른 사람의 힘든 이야기를 어떻게 듣는 것일까? 아니, 힘든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할까? 편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다’가 정답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렵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도 힘든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 또한 힘들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상담자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말하거나 듣는 방식도 일반인들과 조금 다르다고 답하고 싶다.
상담사들은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은 직업으로 보고 되고 있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은 그들을 돕고 싶거나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즉 관계의 욕구가 큰 사람임을 의미한다. 관계는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음으로 시작된다. 상담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문제를 꺼내 놓고 직면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고, 혹은 자존심 때문에, 남들이 뭐라고 할 것만 같아서 등등. 따라서 상담사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상담기술들을 배우고 훈련해서 상담에 적용한다.
상담하러 온다는 것은 자신이 사용했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힘든 일에 부딪히면 우선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해 보려 한다. 자기 생각과 판단, 과거의 경험을 적용해 본다. 혼자 해결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친구나 직장동료, 그리고 이웃의 친한 사람들과 가벼운 수다나 대화를 통해 해결을 시도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로도 문제가 해결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 상담실 문을 두드리게 된다. 상담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담자가 자기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떠한 선택과 행동을 했으며 그래서 지금의 심정은 어떠한지 알아야만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두서없이 시작된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입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말해지는 순간, 태산같이 커 보이던 문제가 내 손 위에 올려진 문제 그 자체로 보이기 시작한다. 성난 파도 같았던 마음도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하고 막다른 골목 같았던 그 길 옅에 빼꼼히 열려있는 작은 문을 발견하게 된다. 상담사들은 이러한 순간을 ‘알아차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길 위이 풀숲을 헤치고 나가지 않고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들거나 시선을 돌리기만 해도 또 다른 세상과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야기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엉키고 뭉뜨그려져 혼란스럽게 보이던 일들을 가지런히 풀어내고 정리하며 해결해 주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주고 싶지 않았어요”, “알고 있지만 하기가 참 쉽지 않아요.”, “그 사람도 어떻게 보면 불쌍해요.”라는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나의 감정과 행동을 보고, 너를 이해하게 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찾아가는 이야기들은 상담을 종결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상담사의 훈련 정도, 상담경험 그리고 개인적인 품성 등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상담은 내담자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내담자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상담사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드러난 이야기 뒤에 숨어 있던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상담을 마무리한다. 그래서 상담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하고 자신이 이야기는 다했는데 상담료까지 내야 한다고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우리는 타인과 대화를 할 때,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내 이야기를 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고, 내 이야기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길 원한다. 아이들 문제나 가족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만나 위로하고 격려하는 대화에서 내가 하는 말과 친구의 말의 비율과 내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화의 많은 부분이 그 사람이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는 나의 판단, 나는 이런 일까지 했었다는 나의 경험, 너의 이러저러한 면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나의 훈계 겸 충고, 그래서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나의 해결책까지. 나의 이야기는 위로와 조언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대화를 마치고 나면, 나는 문제를 해결해 준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알 수 없는 찜찜함이 남는다. 그 친구는 괜히 털어놓았나 하는 후회, 감추고 싶었던 모습이 드러난 것 같은 부끄러움,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옮겨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더해져 또 다른 고민을 떠 안게 된다.
상담사들은 치료 목적을 위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상담실 문을 열고 나기는 사람마다 하나씩 문제 해결방법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방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1만 원짜리 지폐처럼, 꺼내 놓은 자신의 이야기들 속에서 문제가 아닌 해결점을 발견하게 된다. 리모컨을 손에 들고 리모컨을 찾다 ‘아차’하는 순간처럼 끝없이 쏟아낸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는 번개같이 나를 후려치기도 한다. 문제이야기 속에 해결이야기도 희망이야기도 행복한 이야기도 뒤엉켜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은 잘 고르는 것 뿐이다.
나를 위한 대화를 하는지 너를 위한 대화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테이블 건너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나를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