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초의눈] 영어만 외국어인가, 제2외국어의 역설

교실에서 외국어라는 말은 이제 거의 영어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중국어도 일본어도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한때는 어엿한 선택지였던 언어들이 지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과목으로 밀려나 있다. 영어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어 하나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시노인사이트 8월8일자 기사 “영어만 외국어인가”, sinoinsight.kr/news/531366). 이 지적이 얼마나 현실에 맞닿아 있는지는 최근 수능 통계를 들여다보면 더 분명해진다.

 

이미지 Gemini 제작

 

2026학년도 수능(2025.11)에서 제2외국어·한문 영역에 접수한 수험생은 10만 명을 넘겨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얼핏 보면 이 언어들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는 듯한 착시를 준다. 그러나 실제로 시험장에 들어가 답안지를 채운 학생은 전체 응시자의 십 분의 일 안팎에 그쳤다. 국어와 영어는 거의 전원이 응시하고 수학과 탐구 영역도 아흔 몇 퍼센트대의 응시율을 보이는 것과 정반대다. 접수는 해 두었지만 정작 시험을 보지 않는, 말하자면 보험 삼아 이름만 올려 두는 학생이 대다수라는 뜻이다. 대학이 이 영역을 최저학력기준 정도로만 취급하고 정시 배점에서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만들어 놓았으니, 학생 입장에서는 굳이 시간을 들여 공부할 이유가 없다. 접수 인원이 늘어나는 것과 실제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이 통계보다 더 잘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이런 결과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2외국어는 영어와 비슷한 지위를 얻지 못하고, 기술·가정, 정보, 한문, 교양과 한데 묶인 교과군 속에 자리한다. 여러 과목이 한 그릇에 담겨 있으니 학교는 시간표와 교원 수급, 수강 신청 인원을 따져 개설 여부를 정하고, 그 그릇 안에서 제2외국어는 다른 과목들과 자리싸움을 벌여야 한다. 게다가 이 교과군에 배정된 필수 이수 학점 자체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고교학점제가 학생의 진로와 흥미에 따른 폭넓은 선택을 표방하지만, 정작 제도의 설계는 그 선택지를 자연스럽게 좁혀 놓은 셈이다.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과목은 학생이 선택하지 않고, 학생이 고르지 않는 과목은 개설이 줄어들며, 개설되지 않은 과목은 다시 선택할 수 없는 과목이 된다. 교육 당국이 이 악순환의 책임을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원문의 지적은 바로 이 지점을 겨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이 주변부화가 원래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수능이라는 시험 자체가 도입된 1994학년도에는 제2외국어라는 영역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앞선 학력고사 시절에는 많은 학교가 학생에게 배울 외국어를 사실상 지정해 가르쳤고, 그 결과 실제 쓰임새와는 무관하게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배운 세대가 두텁게 존재한다. 제2외국어가 수능의 독립된 선택 영역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01학년도의 일이다. 도입 초기에는 존재감이 미미했지만 이후 대학 입시에서 나름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던 것이 서서히 힘을 잃어 지금처럼 접수 인원과 실제 응시 인원 사이의 간극이 두 배 가까이 벌어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시 말해 제2외국어의 위축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대학과 교육 당국이 이 언어들에 부여하는 제도적 무게를 조금씩 덜어낸 결과에 가깝다.

 

원문이 던지는 제안, 곧 영어를 포함한 모든 외국어를 하나의 독립된 선택영역으로 묶어 학교 교육과 입시에 실질적으로 반영하자는 구상은 그래서 단순한 이상보다 한 번 있었던 제도적 위상을 되찾자는 요청에 가깝다. 중국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는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중 관계가 좋을 때든 갈등이 불거질 때든 그 사회를 정확히 읽어낼 전문가는 필요하고, 그런 전문가는 중고등학교 단계의 언어 교육 없이 대학과 국가가 하루아침에 길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AI가 문장을 옮겨줄 수 있는 시대일수록 문화적 맥락과 상대의 의도를 읽어내는 사람의 눈은 오히려 더 귀해진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에 서 있다.

 

물론 이 제안이 현실화되는 데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언어마다 난이도와 학습 부담이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공정한 환산체계를 만들 것인지,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지금 여러 언어 과목을 유지할 교원과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는 원문도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은 숙제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구조, 곧 영어만 실질적인 외국어로 기능하고 나머지는 있어도 그만인 곁가지로 남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언어·문화적 다양성이나 세계시민 역량이라는 교육과정의 선언이 공허한 문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다양한 언어를 배우고 선택할 권리를 학생에게 돌려주는 일은, 결국 한국이 세계를 얼마나 넓게 그리고 깊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과 이어져 있다.

작성 2026.08.11 11:28 수정 2026.08.11 11:36

RSS피드 기사제공처 : 씨초포스트 SSICHO Post / 등록기자: 이정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청년 전통 예술인을 위한 무료 2026 AI 활용 실습 교육 참가자 모집..
SK렌터카, 구글 워크스페이스 전사 도입으로 AI 업무 환경 구축
삼성전자서비스, 업계 최초 보안 인증 획득… 고객 신뢰 대폭 강화
NHN KCP, 18조 경매 대금… 카드 납부로 자금 혈맥 확 뚫었다
LG화학, 중국 장화웨이와 손잡고 고대역폭메모리와 AI 반도체 시장 전격..
기아, PV7 글로벌 최초 공개… 차세대 대형 전동화 PBV의 정수
[힐스디포레] 남양주남부서 부실수사 규탄 1인시위 3일차
단돈 3천원 포도 수확 체험! 청주 다함께농장 가성비 나들이
함께가자!
2026 경기도 아토피 힐링데이 성료… 소아 아토피 극복을 위한 4주 보..
[힐스디포레] 남양주남부서 부실수사 규탄 1인시위 2일차
삼성전자, 25만 미래인재 육성 \'갤럭시 AI 클래스\' 2학기 모집 ..
전세ONE 서비스 개시… 공공 데이터 연계로 부동산 시장 투명성 제고 기..
나도기브, 일상 속 지속 가능한 기부·자원봉사 앱 정식 출시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데이터 플라이휠 가동 및 도심 주행 성과 공개
현대자동차, 달리기로 아프리카 대륙 사막화 막아낸다
260914~260920
Jeju LAVA
정동원 팬카페 원더즈, 단순 기부 넘어 직접 나눔 실천하는 성숙한 팬덤의..
보조국사 지눌의 지팡이
iOS 27에서 iOS 26으로 데이터 유실 없이 다운그레이드하는 완벽한..
포스코스틸리온, 건축 외장재 시장서 저가 수입재 차단할 국가 규격 마련
폐배터리의 반란, 현대차그룹과 대기업 연합이 함께 만드는 에너지 혁신 생..
최태원 SK 회장, 울산 현장서 AX 대전환 점검… AI 풀스택 리더십 ..
한화시스템, MSPO 2026서 차세대 우주 AI 솔루션 전격 공개!
으악새
CCBS뉴스 탐사보도 기동취재본부. 담당PD 백종찬..
문이열려있는교회를찾습니다. #ccbs #교회 #열린교회
유튜브 NEWS 더보기

수사기록 왜 유출됐나? 돈 벌려고 했습니까?

김승원 진상 규명을 위한, 김승원 법무부 여야 만장일치 자료 제출 요구 전격 제안

Messeger_어머니의 바다_33.3921894 126.2367938(성백작가 육체설치 - 협재해수욕장)

Arvo Pärt- Spiegel im Spiegel

그러면 6월 30일 출생한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 이재명, 아동수당 7월 시행 문제점 지적!

훨씬 더 큰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방법! 벌금 내고 말지라는 마인드 이번에 확실히 끊어냅니까?

가짜 철거민 코스프레? "강신철 장관! 자격 있나?" 천하람 왈

김용민의원 약속파기, 면담거부, 질의 무응답 규탄 집회

[긴급 규탄] 약속을 저버렸다면 사퇴하라 — 김용민 의원 규탄대회 현장 생중계 | 방사선·라돈 피해 주민 연...

마가가 전하는 교회(4)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수수방관 남양주 경찰4년째 라돈 피폭에 방치된 5천억 오피스텔의 진실| in_남양주 남부경찰서 안진걸이간다

기혈이 막히면 통증이 시작된다, 100세 시대 관절과 근육을 살리는 생체에너지 활성법

윤석열 한동훈 때 탈탈 털었잖아!! 김승원 편파 수사 의혹 매섭게 추궁

"독일마을 펜션 급매" 보성부동산, HP.010-8337-8949

"현재 결정된 바가 없습니다"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

아침 장사부터 디저트 매출까지…켈리토스트카페 2026 신규 가맹점 모집

트럼프에게 북한 만나지 말라? 현실적이겠습니까? 굳건했던 한미 동맹의 변화, 김민석 의원의 일침

남양주 시청 앞, 백주선 변호사의 호소

문진석 의원 질의

갤럭시 카메라로 사진만 찍으세요? 병원 영수증, 서류 1분만에 pdf로 스캔하세요 (앱 설치x)